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잡담 105 - 왜 지겨울까?>

희망으로 2014. 2. 19. 13:32

<잡담 105 - 왜 지겨울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슬슬 새어나오는 소리

"사는 게 왜 이리 지겨워..."

머무르는 병동의 화장실 두 곳이 비데가 다 고장이다. 하나는 아예 고칠 생각이 없는지 철거해버렸다. 아내는 대장이 마비되어 비데의 도움이 없으면 일을 못 보는데....

위 층으로 갔더니 세면장의 호스가 갈라져서 신발로 물이 줄줄 흐른다. 밖에서는 빨리 나오라고 누군가 연신 두드리고 독촉을 하고, 

일주일이 넘도록 떨어지지 않는 기침 감기로 녹초가 된 몸이 자꾸 짜증만 나고 화가 솟구친다. 우씨...

딱 한 건 그런데도 성질대로 못한다는 것, 간호사실과 병원과 한 바탕 따지고 화낼 자신이 없다. 이런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일들로 갈등까지 가서 병원이라도 옮겨야 하면 감당할일이 너무 많다. 귀찮고 불편할 일들이...

이래서 자꾸 침몰한다. ‘좋은 게 좋은 거’ 라든지, ‘시끄럽게 하면 뭐가 좋으냐?’ 등 조용한 게 평화다! 뭐 그런 자기변명을 덧붙여가면서...

갑과 을이 사는 세상에서 을이 비굴해지고 눈치보고 이랬다저랬다 하며 사는 거 다 현실적 약점과 무관하지 않다. 내 모습이 참 구차하고 초라하다. 무엇이던 원칙대로! 용기 있게! 그건 내게 자부심도 있고 자기 힘만으로도 잘 살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행동이다.

더 코너로 몰릴까봐, 더 남들에게 왕따를 당할까봐 두려운 상태에서는 하기가 쉽지 않은 ‘을’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이러니 누가 남들을 위해 나서주고, 정의와 경우를 앞세워 행동할 수 있을까?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들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아내도 짜증을 낸다. 대놓고 바꾸지도 못하고 너그럽게 감수하지도 못하면서 만사 투덜거리는 내 모습이 보기 싫다고, 나도 내가 싫다. 자부심도 자신도 없어지는 처지에 남는 건 민망하리만큼 질긴 생존의 꿈틀거림뿐이다. 이런 내 모습이 내겐들 이쁠 리가 없지...

슬슬 지겹다. 왜 이러고도 살아야하는지, 무엇이 이 지겨운 생명을 노래처럼 흥겹고 꽃처럼 향기 나게 바꾸어 줄 수 있을까? 그러지 않으면 이게 지옥이지 따로 지옥이 있나 싶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될 대로 나가면 완전 폐인에 버러지가 될 것이다. 한걸음을 되돌리고 추스르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미담의 주인공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늘상 닥친다. 날마다 닥치고, 하루 중에도 몇 번이 닥치고, 심지어 잠자리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조차 갈림길이 바로 앞에 턱! 하니 놓인다. 우울증과 멋진 삶의 갈림길로...

사람이 박수를 받고 어깨에 힘주며 당당한 모습으로 사는 것과 추락하여 몰골이 상하며 천덕꾸러기로 연명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 무슨 몇 십년을 추락해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혹은 석달, 일년이면 그렇게 극한 반대상황으로도 몰린다.

수많은 사람을 호령하며 잘 나가던 사람도 정변이 급박하게 바뀌어 쇠고랑을 차고 예전이면 얼굴도 똑바로 못볼 아랫것에게도 질질 끌려다니기도 하고, 고상하고 부유하게 떵떵거리던 사람이 험한 질병에 걸려 졸지에 피골이 상접하고 치부를 다 남에게 내놓고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명예와 인기의 정상에서 끝이 없을 것 같다가도 예상치 못한 사고로 사라져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한 번 내리막길에 굴러서 바닥에 떨어져보면 참 가관이 된다. 당장 몇 숟갈 밥도 구하지 못해 배고픈 처지가 되고, 바닥난 돈으로 치료도 받지 못할 지경이 되면 육신에 담긴 영혼도 값이 별로 안 나가게 된다. 이전에 그렇게 비싸보이던 사람이 덤핑물건처럼 되고 마는 서글픔이라니,

그래도 맑은 물처럼 밝은 별처럼 고고하고 향기 나는 영혼을 보이며 세상을 마감한다면 정말 뭇 세상의 칭송을 들을만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이 ‘을’의 생생한 삶은 그 희망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저 하루도 지겨워지는 생활에 빛과 향기는 뭔 씨나락...

대단한 반전의 기적보다 작은 동기가 필요하다. 그저 씨익 한 번 웃을 수난 있는 뭐 그런 작은 반전의 계기가 없을까? 일년 십년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라도 좀 유지하고 싶으니, 

‘드르륵!’ 전화 진동이 울린다. ‘누구지?’ 들여다보니 딸래미다. 
“응,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여기 참고서 사러 서점에 왔어, 책값도 좀 주고, 아직 점심도 못 먹었어!”
“나 못 간다. 시간도 촉박하고, 돈 보내 줄께...”
“나 사진 찍은 거 줄려고 했는데, 친구랑 이미지 사진!”
“그래? 그럼 나갈께! 좀 있다 보자~”

이 나들이로 오늘 하루 추락하던 지겨움이 좀 브레이크가 걸리려나? 반전까지는 못되더라도!
돈도 좀 깨지고, 왔다갔다 바쁘겠지만, 공부하겠다고 스스로 참고서 사는 딸, 이쁜 사진도 스스로 주겠다니~~ (기도한다. 발목 잡는 지겨운 귀신은 좀 물러가고 생기주는 평안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