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산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희망으로 2013. 8. 23. 09:40

<산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

병실에 80이 넘으신 할머니 환자 분,
간병하시는 여사님을 '엄마'라고 부르신다.
자기는 딸이라면서,

두 어살 더 어린 옆 침대의 할머니가 물었다.
"내가 얼마쯤으로 보여요?“
"할머니!“
자신은 어린 처자란다.

딸 같은 아주머니를 친구라고 즐거워하고
손녀 같은 아가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 속에는 실재 자기의 나이보다
어리고 젊고, 늙지 않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도무지 낡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순수함으로 정지 된,

치매는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지를 차단해준다
주위 속에서 인정하라고 반복해서 강요하는 
생로병사의 압박을 벗어나
자기 속의 변치 않는 나이를 주장하게 한다.

멀쩡한 이들은 혀를 차지만
자신은 아픈 동안 누리는 행복이다
나도 속으로 자청해서 치매에 걸린다.

- 어린 날 놀던 동무들과
- 청년의 때에 꿈꾸던 푸른 이상과
- 재물과 지위와 성공에 연연하지 않으며
- 늙고 병들고 죽음의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던

'나는 아직 변함없는 처음의 생명이다!' 라고,

마음속만이 아니고 현실생활에도 변함없는 게 있다.
아침 7시 20분이면 어김없이 아침 밥 차가 오고,
치우고 씻고 운동치료하고 또 밥 차가 나오고,
또 이것저것 설거지 빨래를 해치우고 오후 치료를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저녁 밥 차, 

그 사이마다 커튼치고 몇 번인가 소변을 빼고,
낮 동안 못한 장청소를 밤이면 씨름하다가 잠들고,
한 밤중 두어 번 소변처리로 깼다가 다시 잠들고,
다시 아침 밥 차가 나오고...
그럼 보조침대의 좁고 불편한 수면으로 어깨랑 목이랑 뻐근해진 채
또 하루를 시작한다.

요 근래는 불규칙한 병원 나들이가 부쩍 많아졌다. 아내가 아니고 내가,
점점 무거워지는 우울증이 염려되어 다니기 시작한 정신과치료가 두어 달을 넘어가고 있고,
내과에서 한 피검사에서는 또 간수치가 정상의 2-3배를 넘었다. 약을 타왔다.

비염은 질기도록 떨어지지 않고 괴로운데 만성 위염과 함께 아예 붙어 살려나보다.
머리숱은 어느 날은 더 많이 빠져나간 듯 횅하게 보이고, 
근 2년에 걸쳐 먹고 나아가던 발톱무좀이 또 슬슬 고개를 들어 다시 약을 처방받아왔다.

식사 후에 먹는 약봉지들이 어느 때는 4가지 5가지나되어 헷갈린다.
가끔 티브이에서 보던 독거노인들의 방에 수북히 쌓였던 약봉지들이 떠오른다.
‘아하, 이렇게 늘어가다가 보따리가 되는구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돈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그러다 다람쥐도 늙으면 힘이 빠지고, 앞다리나 허리나 어디가 고장 나면 쓰러지겠지?

문득 찬송가의 가사가 심하게 공감되면서 생각난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말과 뜻이 깨끗하고 착해도 다시 나게 못하니,
참아도 안 된다는, 그 단언이 와서 닿는다.

울기도 많이 했고, 힘도 많이 써보고, 착하고 성실하게도 살려고 애썼다.
참기야 선택이 아니고 필수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거다.
그래도 간신히 ‘믿으면 되겠네’ 그 한 구절을 붙들고 버티며 산다.

믿어도 날마다 변함없이 밀려오는 것들은 지독하다.
투병이라는 비정상적인 환경, 생활로 생기는 마음고생, 몸 고생, 
현실적인 넘어야할 산들은 믿던지 안 믿던지 날마다 닥쳐온다.
믿는 사람이던 안 믿는 사람이던 구분 없이, 
울고, 힘쓰고, 참아야 할 각가지 일들이,
그러고 보면 이건 산사람이라면 모두가 죽는 날까지 감수해야할 일들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하루가 없다.
살아 있는 사람만 맞이하는 오늘.

살아 있기 때문에 늙는다.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다.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롭다.

죽은 사람에게는 도무지 없는 것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슬픔의 땅에서 기쁨의 꽃을 피우고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배를 띄운다
외로운 세상에서 위로를 나누고
마침내 살아서 '죽어도 괜찮아' 고백을 한다.

사랑의 한가운데 서면
살아서만 알 수 있는 죽음보다 큰 세상을 본다.
두려움을 없게 하는 사랑을!’


오늘도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아파서, 힘들어서, 지쳐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 살아야겠다. 
죽은 사람은 사랑할 수 없으니.

사랑만이 살아 있는 것들이 겪는 아픔을 달래주고, 
살아있음의 복을 누리게 한다는 걸 경험했기에!

믿어야 산다면, 
나의 믿음은 그것이다.
우리에게 그 사랑을 주신이가 
사랑의 본체시고 완성시키는 분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