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자숙하고 침묵하는 날로 들어가면서...

희망으로 2013. 6. 23. 11:12

<자숙하고 침묵하는 날로 들어가면서>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내 영혼은 고결하고 한없는 자비를 베풀고, 욕망으로부터 흔들림 없기를 바라건만,

육체에 깃든 처절한 본능은 발목을 잡고 쉴 새 없이 흔드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나는 괴수중의 괴수로다.“

 

이렇게 품위 있게 표현을 하고 이것이 성경의 바울이 한 말이라면 사람들이 깊이 감탄을 하면서 아멘!’ 하며 고상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위 내용을 일반사람이 행동으로 보일 때도 소위 기독교인들이 그런 너그럽고 수긍하는 자세로 보아줄까요?

 

저부터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위 내용대로 사는 사람이 내 주변에서 하루 이틀, 일년 이년, 계속 그러면 아주 멀리하고 정죄하고 비난하였습니다.

내가 남에게 그렇게 대해줄 때는 충격이 적었는데 막상 내가 그 처지가 되어 남에게 비난과 멸시를 당하여보니 그 충격은 열배도 넘었습니다.

 

우리는 말로는 수없이 자주 반복합니다. 연약하고 죄 중에 방황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랑을 베풀며 살게 해달라고, 그러나 그건 예배시간 기도속이나, 글 속에서만 넓고 높을 뿐이지 사람을 만나는 관계 속에는 전혀 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고통 속에 오래 머무르고, 어느 순간 겹칠 때는 반듯한 외모도 성격도, 심지어 말의 표현도 거칠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비와 긍휼 사랑을 말하던 사람들이 안색을 바꿉니다. 비수를 박아놓고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 같으니, 기도하고 감사하고 참으면서 더 선하게 살아야지,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아! 빨리 회개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모양 나게 소원을 빌고, 의젓하게 남들에게 본이 되도록 견디라고 훈계를 합니다. 한두 번에 안 고쳐지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날을 갈고 세워 난도질을 합니다.

 

울지도 말라, 원망도 말라, 언제나 정장에 반듯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해라....’

 

돌아보니 저도 그랬더군요. 믿음의 정도가 연약하거나 흔들리는 사람을 은연중에 속으로 낮춰보며, 흘려보면서 우습게 무시하고..., 당해보니 그 상처가 이렇게 심한 걸 모르고,

 

못살겠다.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다.

이럴거면 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냐구요!

배운 거 살 힘을 주던지, 아니면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살게 냅두던지,

참말로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 힘들어요

 

이 한마디 했다고 타락한 기독교인으로 단죄를 받았습니다.

나는 유명한 바울도 사무엘의 어미 한나도 아니니, 비슷한 내용의 괴로움도 극과극의 차별 대우를 받습니다. 평소에 내가 남들에게 휘둘렀던 것처럼...

 

우리 역사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육했던가요. 순전히 사람들이 세운 하나님의 기준으로 말입니다. 중세기 때도 두 서너 명만 지목하면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타 죽은 다음에 마녀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어처구니 없는 재판방식으로, 수백만 명이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특별히 가까이 부른다는 이유로 유태인은 또 몇 백만명이 죽어갔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언제 허락한 적이 있다고,

 

지금 시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라고 추구하는 말과, 살면서 이중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내 모습에서, 내가 당해본 남의 모습에서 처절히 느낍니다, 어쩌면 입에만 달고 사는 기독교의 사랑과 긍휼은 차라리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사람들의 친절만도 못한 편협함과 죄악인 것을...

 

도덕적이고 완벽하지 않으면 사라지라고 비난하고 훈계하는 무서운 개신교 신앙인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좀 쉬고 싶어 말도 글도 만남도 잠시 중단하고 침묵기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읽으면서 일정시간을 자숙하렵니다. 못된 공격성으로 남에게 상처 준 나의 지난날들과, 내게 그걸 되돌려 뼈저리게 알도록 해준 남도 변화되기를 기도하면서...

 

(세상의 죄인들을 향해 다 오라고 부르면서 정작 교회 안에서 가장 대접받는 사람은 죄인 아닌 사람들이고, 가장 눈치 받고 훈계당하며 은근한 천대를 받는 사람들은 죄인들입니다. 믿음의 수준이 낮은 사람을 포함해서... 이 모순의 아픔이 사라지기전에는 쉽게 성도의 자부심을 내세우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