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늦어도 기억하시는 하나님
희망으로
2013. 5. 15. 20:51
<늦어도 기억하시는 하나님>
“사모님, 언제가 일 년인지 아십니까?”
“언제지요?”
“지난주가 사모님이 제게 성경책을 주신지 꼭 일 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하!”
“벌써 그렇게 되셨나요?”
충주에서 청주까지 12인승 승합차에 만원으로 아내 문병을 하러 오신 장인어른과 목사님, 사모님, 권사님들의 대화입니다. 목사님 내외분을 빼고 대부분 70이 넘으신 시골교회 권사님들과 80이 훨씬 넘으신 장인어른의 병원 방문만도 고마운데, 이 대화는 꿈같은 감사요. 행복한 선물이었습니다.
아내의 오빠는 4명입니다. 그중에 세 분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어렵게 개척을 하고 근근이 유지를 하시는 두 분과, 개척 중 목사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산책길에 뒤에서 덮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큰 오빠까지,
그런데도 장인어른은 교회를 나가시지 않았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자녀들의 권유와 시도가 있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북 출신이신 장인어른은 요지부동이셨고, 장모님은 더더욱 손을 흔드셨습니다. 자녀들이 선택하고 가는 길은 반대 없이 얼굴 붉히지 않으시고 차례도 지내지 않는 동의를 해주시면서도,
저는 시댁부모님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가족 중 아무도 다니지 않는 교회를 제가 나가는 것조차 한 때는 불효처럼 불편해 하셨습니다. 제 이름을 절에 올려놓고 가끔 빈다는 어머니는 한집에 두 가지 종교를 두면 망한다는 시중의 터무니없는 말까지 거론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혼자되신 어머니는 결핵과 당뇨까지 생겨 누군가가 모셔야할 때 우리가 충주로 모셨습니다. 교회 나가자고 조르지 않는다는 약속을 제게 받으시고 오셨습니다. 이사 오시는 날 마을의 교회가 짐을 도와주러 왔을 때도 교회 나오라는 말에 그냥 두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채 돌아가신 것은 제 믿음의 양이 너무 작아서라는 자책을 남겼습니다.
친정 부모님이라도 꼭 교회를 나가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평안을 누리시다가 하늘로 부름 받아 가시기를 간절히 바란 우리는, 병원 생활 중에도 문병오시는 교회목사님께 여러 번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장인어른은 쉽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통사고로 운명하신 큰 오빠를 잃은 후 성경책은 새벽마다 읽으시며 마음의 문을 좀 여시고도 마을교회 잠시 나가시더니 바로 접었습니다. 너무도 자립생활을 강조하시는 이북 실향민들의 눈에 교회 다니는 분들의 생활방식이 성실치 않아 보였는지 무엇이 많이 불편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아내가 병원생활을 한지 4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변함없이 신앙을 붙들고 사는 아내와 우리 가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입니다. 아주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딸 나눔이가 하나의 끈이 되었습니다. 버스도 자주 없는 시골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교회를 다녀야하니 교회에서 목사님이 직접 차를 가지고 주일마다 데려가고 데려다 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늘 얼굴을 보고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어쩌다 통화라도 하면 목사님에 대한 고마움과 칭찬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쉼 없이 부모님의 기도를 요청하고 더구나 우리가 다니던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들의 변치 않는 기도와 몇 년을 줄기차게 병원 방문을 지켜보시면서 마침내 출석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그 소식을 듣고 우리는 거의 20년을 넘긴 염원을 마침내 이룬 것에 큰 감동을 받았고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습니다. 비록 장모님은 안가시고 장인어른만 가시는 반쪽 구원이지만 곧 동행하실 거라는 기대도 가지면서!
모든 노력들과 여러 사람들의 기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결과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어렵고 긴 투병과정이 하나의 씨앗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 하나님을 영접하는 도구로 사용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뿌듯합니다. 신자들의 고난이 결코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눈으로 보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쓰나미처럼 밀려올 하나님의 은총이 그동안 굳어지고 외로웠던 영혼을 얼마나 따뜻하게 녹여줄까요? 상상만 해도 벅찹니다. 예배드릴 때 기도시간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딸인 아내의 회복과 장인어른 자신의 위로를 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지난 삶의 허무함과 고단함이 떠올라 눈물지으실 거고, 좀 더 일찍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함을 죄송해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의 한 말씀이 잔잔하게 속에서 반복이 됩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속태우는 은총이,
장모님이 장인을 따라서 같이 동행하여 교회문턱을 넘어서고,
예배시간에 손을 모아 자신과 자녀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시는 날이 오기까지는,
하지만, 비록 그 날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만큼으로도 넘칩니다.
진실로 아멘입니다! 진실로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