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예언을 한다! - '잘 될 것입니다!'라고...
<나도 예언을 한다 - 잘 될 것입니다!>
병원에 몇 달을 같이 지내다 떠나는 분이 있다.
뭐 오랜 병원 생활을 돌아보면 결국에는 안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오늘 특별히 할 이야기는 환자가 아니고 그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다.
몇 달을 환자를 따라서 병원을 옮기고, 따라다니며 돌보는데 별난 성격과 침체된 우울함 때문에 좀 힘들었나보다. 그런데도 얼마 후 결혼식을 치를 자녀 때문에 조금만 더 할머니 환자를 돌보았으면 했지만, 정작 할머니 환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요양원으로 가시는 바람에 부득이 헤어지게 되었다.
곁에서 보고 겪는 느낌으로는 그만 돌보시게 됨을 잘 되었다고 해드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형편문제로, 또 그간 정든 같은 병실의 사람들하고 헤어지게 되어 서운해 하신다. 그런데 내가 예언을 해드리고 싶었다.
“걱정마세요!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지금보다 마음도 편하고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무슨 신 내림을 받은 것도 아닌데 무슨 예언?? 사실은 그런 것은 없다. 갑자기 일이 중단되고, 큰 경사를 앞두고 염려하시는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어서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이 하는 말은 아니다. 장담을 할 수 있다.
아마 앞으로도 한 두 번은 그다지 맘이 안 맞는 환자를 만나거나, 날짜가 좀 공백이 생겨 쉴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날이 꼭 올 거라는 장담. 그 이유는 앞으로 행운처럼 만날 어떤 환자나 바깥의 조건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 분 속에 있다.
여러 사람들이 속된말로 그 간병인의 편을 들어주게 된 것은 그 분이 가진 인내심과 조용한 성품, 남에게 나누고 도우려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러니 한 번, 두 번, 몇 번은 또 운 나쁘게 고약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안 좋은 환경에 처할수도 있지만 언제인가 그 분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분을 만나기만 하면 아마 무척 일이 잘 풀리고 평안히 일을 하시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성품이나 게으름을 자기속에 가진사람은 운이 좋아 몇 번은 요행히 잘 보내고 수입도 잘 올릴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반드시 신임을 잃고 관계는 나쁜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특히 24시간 노출되는 간병생활에서는 더더구나...
그러니 땅 집고 헤엄치듯 당연한 예언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신뢰의 바탕을 자기속에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바깥의 이유만 대고 탓하는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성경이 숱하게 말하는 행복과 평안의 조건이 왜 자신이 변하고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는가! 내 속의 변화로 가지게 되는 자질은 잃지 않는 행복의 뿌리지만 남에게 기대는 자질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거의가 좋지 못한 끝을 맞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나의 예언이 맞아서 그 분이 좋은 일이 빨리 생기기를 기도하면서, 나도 내 속에 좋은 자질을 키우고 유지해서 언젠가 좋은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