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은 무한 반복되는 일상...
<나의 적은 무한 반복하는 일상...>
새벽 3시의 끝 무렵
아내는 나를 깨운다.
소변을 빼 달라는 부탁,
눈은 시리고 늘어졌던 몸은 돌아오지 않은 채
주섬 주섬 용품들을 꺼낸다.
고무호스 식염수 멸균탈지면 멸균 장갑 소변통...
‘아....지겹다!’
문득 몰려오는 느낌,
거의 3시간 안팎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어제 오늘, 몇일 몇 달로 끝날 일도 아니고
어쩌면 무한히 계속될지도 모를 질병의 후유증
이것은 꽃처럼 향기나는 삶도 못되고
이것은 한 방 거룩한 희생도 아닌
모양없는 전쟁의 소리도 없이 쏟아지는 포탄들이다
살아남으면 당연하고 맞으면 끝나는 고통
명분 있는 순간의 죽음이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동료를 살린 강재구소령
지하철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희생한 한국인 이수현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폭탄을 던지 윤봉길
복음의 전파를 위해 순교로 바친 숱한 신앙의 선배들
저이들의 고귀한 죽음만큼 못지않은 삶이 있으니
이른 새벽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일생을 부엌으로 밥을 지으러 가셨던 어머니 아내들
비가 오나 눈이오나 일터로 긴긴 세월을 나섰던
아버지 남편 가장들...
그 지겹도록 흔적 없는 반복을 감당하셨던 분들에게
나의 존경을 드리고 싶다.
하나님을 상대하려는 겁 없는 마수는
거대한 덩치의 괴물로 오는게 아니고
무한히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으로 파고드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기한이 없이 투병하는 가족을 돌보는 많은 사람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남겨두고 갈까봐 마음 졸이는 부모들
그들이 겪을 날마다의 일상,
날마다의 소리 없는 전쟁을 응원한다.
아마도
하나님은 꽃처럼 향기나지 못하고
한 방에 빛나는 훈장 같은 삶이 아니어도
반복을 참고 소화해내는 무지렁이들을 사랑해주실 거다
나의 묵상은 휘장과 십자가 걸린 성전이 아니고
소변통 들고 버리러 화장실 가는 길에 시작되고,
나의 묵상은 거룩한 성가합창의 소리가 아니고
소변통을 씻는 수도꼭지의 물소리에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