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밀어 내고, 밀어 내고...
<나의 삶을 밀어 내고, 밀어 내고...>
딸아이가 어제 병원으로 와서 간병인보조침대에서 나와 붙어서 칼잠을 자고, 오늘 떠났다.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겠다고 거의 천리 길 먼 포항으로, 중학교 3학년짜리가...
오늘 날씨가 영하10도를 넘는 혹한이었다. 체감온도는 더 낮을 것이다. 등에 가방을 지고 손에 트렁크를 끌고 4시간10분이 걸린다는 버스로 떠났다.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이 참 이상하다. 뭐 그리 힘든 일은 안하겠지만 멀리 돈을 벌어 보겠다고 가는 아이나, 언젠가 독립을 시켜야 하지만 우리 형편이 좀 더 빨리 독립을 시켜야할 처지이니 굳이 돈을 버는 체험이니 자립심을 위한 가벼움만이라고 변명을 하기엔 좀 편치는 않다.
아이를 늘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움직여보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느낌도 감수해보라고 갖은 좋은 말로 반복을 했다. 어쩌다가는 엄마의 원치 않는 난치병으로 인한 폭풍의 무너진 가정의 뒷감당이라고 대놓고도 말하면서,
그렇게 막내만이 아니라 큰아들, 둘째아들도 밀어 내고, 밀어 내고...그랬다. 아이들은 순순히 현실을 인정하고, 때로는 방목이라고 환영도 원망도 아닌 묘한 감정으로 말했다. 어떤 때는 불행에 화도 났을 거고, 어떤 때는 억울하고 슬프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나 엄마의 고의적인 잘못도 아니고, 나쁜 삶을 살다가 누적된 불행도 아닌 걸 빤히 아니 말도 못하면서 참았을 거다.
생각해보니 아이들만 내 삶에서 밀어 내고, 밀어 낸 것은 아니었다. 나와 아내의 꿈도 밀어 내야 했다. 작은 쉼터라도 만들어서 지친 사람들이 새 기운을 얻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다던 꿈은 애당초 아득해졌다고 치고라도, 주변의 아이들 공부도와주고 마음 다독이며 신앙심이라도 심어주자던 아내의 바람도 밀어 내고, 더 나이 들어서 둘이 손잡고 가보자던 870킬로미터 산티아고 도보 순례 꿈도 밀어내고, 밀어 내고...
7년을 옆집에서 제초제 뿌려준대도 고집부리며 벌레들의 천국을 만들면서 밭을 가꾸던 그런 고집도 자존심도 다 밀어 내야 했다. 속수무책 빈털터리가 되어 누구든 주는대로 밥도 받고 반찬도 받고, 후원금도 받아서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예전의 고집불통, 굶어도 고개 숙이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내 생각대로만 하던 모든 자존심을 밀어 내야만 했다. 그걸 받기 위한 계산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너무 무능하고 초라해서 할 말을 잃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고 조카들 2명까지 8명이 한 달에 쌀 한가마니를 꼬박 먹어치우며 우글거리고 살던 시골집도 팔아치울 때, 30년 넘게 끌고 다니던 책 수 천 권, 레코드판, 앨범까지도 다 내다 버려야 했다. 아끼며 아내가 모았던 그릇도 살림도 다 밀어 내고, 밀어 내고...
그러니 뭐가 안 밀려가고 버틸수 있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자녀가 멀어지는 것만이 아니고, 아끼던 물건이 없어지는 것만도 아니고, 자존심이나 재산만 멀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발 딛고 살던 의욕도 목표도 모두 밀어 내고, 밀려 나가는 상징이었다. 이승의 생명으로 사는 것에 대한 포기이고 버림이었다. 아무 남은 애착도 희망도 남기지 않는 텅 빈 마음을 말하는 표면의 사례들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밀어 내고, 밀어 낸 비어버린 자리는 그냥 텅 비어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겨울의 벌판 같을 줄 알았던 그 자리들에 전혀 나와 관계없고, 내 취향이나 능력과는 동떨어진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오랜 병원 떠돌이에 친척이나 친구들도 밀어내고 잊어 달라고 사양했더니 생판 이름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던 분들이 자꾸 병실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정말 투명한 어느 누가 중간에서 마치 소개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내가 다 통제하고 뒷바라지하면서 기대했다면 못 느꼈을 의외의 기쁨들을 안겨주고 살아주어 대견 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더니 자발적인 독립과 의젓함을 선물로 미안해진 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끼고 내 힘으로 마련했다고 믿던 알량한 재산이 날아가버리니, 나 혼자 낑낑매면서는 몸을 두 개로 나누어 벌어도 못 벌만큼 재물을 채워주셔서 병원비랑 먹고 사는 일들이 민망하지 않고 몇 년이나 유지가 되었다.
사람을 가려가며, 내가 아는 것이 유일하고 내 주장과 다르면 선을 그었던 자존심들이 무너지니 의외로 미워서 못 견디던 사람들이 그렇게 고맙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오판에서 깨어나 귀하게 보이기 시작 했다.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운지, 직접 간접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승의 재미와 목적지들을 밀어 내고, 좌절을 한 자리에 다음 세상의 소망이 꾹꾹 채워지기 시작 했다. 그렇게 허무하고 불안하던 이승의 설계도와는 비교가 안되는 영원한 세상에 대한 확신과 기다림이라니! 그건 지금의 뒤틀리는 고통조차도 견딜만한 놀라운 인내심도 주었다. 당장 효력을 보는 진통제처럼 말이다. 물론 가장 큰 결실이야 이 세상 떠나는 날부터 시작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