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불편한 진실
아침 티비에서 어느 연예인의 전원생활 취미생활 이야기가 마냥 자랑처럼 흐르고 있다. 멀리서 수집한 인테리어 소품들, 애완용의 줄어든 식사 걱정, 손수 기른 채소들의 과한 홍보...
펼친 신문의 1면과 사회면에 모진 가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세상을 하직한 모녀의 이야기가 연달아 실려 나타났다. 대구 어디선가는 뇌종양으로 투병하며 버티다 못견딘 엄마와 두 딸이, 인천 어디서는 너무 나이든 엄마와 돌보던 적지 않은 나이의 딸이 6개월이나 밀린 월세 독촉을 감당못해...
누군가가 배부르게 밥을 먹는 것이 그 자체가 죄 있는걸까? 죄 없는걸까? 누군가가 새 옷과 새 자동차를 마련하고 기뻐하는 것이 벌을 받을 일일까? 아무 흠 없는 일일까?
그 자체에는 아무런 선악의 가치가 없다. 다만 주변의 상황에 따라 그것은 지독한 몹쓸 행동이 되기도 하고 아무런 비난을 듣지 않을 행복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바로 붙은 담 넘어에서 라면도 끼니마다 못먹어서 죽어가는 노약자나 병든 이들이 있다면, 그걸 알면서 끼니마다 배부르게 먹고 마시며 그 죽음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면 분명 죄 있다. 모두가 같은 수준의 식사를 맛있게 먹는 세상에서 배부른 만찬은 한 없는 행복과 평화로움이 될 것이고...
주변과 상관없는 부유함은 죄가 되기도 한다. 같은 지역, 같은 시대의 형편을 무시한채 끝없이 추구하는 안락함도 폭력이다. 개인의 즐김과 누림 자체가 무슨 잘못이겠냐만 부익부 빈익빈이 반복하며 대를 물리고, 그 피해가 강도와 폭력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회에서 잡기나 취미를 중계해대며 과시하는 풍조는 분명 문제있다. 불편한 진실이다.
그 가치를 강제로 실현시키겠다고 바깥에서 타율적으로 평등화 시키고 공유하는 사회가 공산주의를 낳았다. 상식에 기초하고 이성에 바탕을 두어서 법이나 제도로 축한 것이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주장이었다. 스스로 마음 내키지는 않지만 세금도 내고, 복지도 펴고,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스스로 자발적 검소와 나눔을 실천하는 종교적 성숙한 세상이다. 그러나 자주 그런 추구를 해야하는 종교적 세상도 썩고 타락한다. 오히려 더 심한 집단적 탐욕과 위선으로 중심인 사람의 자리는 뒷전이 되고 능력과 과시가 최상위 목표가 되었다. 무너뜨리고 새로 나온 종교적 각성이 또 타락하고, 또 반복하고...
사실 중요한것은 가난의 평등도 아니고 부자의 선심도 아니다 시한부적인 세상의 공평함과 안일함이무한히 지속되지 못하고 단명하는 인간의 한정된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직 사람과 사람의 영혼이 상처받지않고 대접받으며 평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뿐,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고민은 사라지니 복지도 나눔도 형식에 급급하고 보이지 않는 최상의 과제는 치부와 권력과 잘못된 명예욕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 나쁜 집단적 공백의 구덩이로 사람들이 쑹쑹 빠져 죽고 있다.상처받고 멍들고...
남들이 그것을 바로 잡겠다고 나서면 혁명이 된다. 필연코 부패를 또 생산하는 한계적 운명, 모든 반성과 개혁은 자발적으로 스스로 해야만 지속적으로 간다. 변질되지않고 진실의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그러나 그 길은 힘들다. 누군가가 손발을 묶고 우리의 양식을 빼앗아가면 참고 버티는 사람도, 스스로 음식을 줄이고 허기를 견디며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기란 더 어려운 길이다. 우리의 본성에는 좋은 것들이 많지만 나쁜 표현으로 사용하는 짐승에 가까운 본성도 있기 때문이다.
빼앗기고는 살아도 나누어주면서는 살기 힘들고, 맞으면서는 살아도 남을 때리지 않으면서 살기는 더 많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불편한 진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라고 했고, 그렇게 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두 가지의 본성을 다스리지 못하여 쉴새없이 변명을 만들어댄다. 극단적인 나눔과 공평함의 실천이 불가능한 이유를 만들어 낸다. 아니면 더 나가 단점과 폐지론을 내세운다. 그렇게 살기가 힘들어서, 혹은 아깝거나 안하기 위해서...
진실은 항상 단순하다. '이웃이 굶으면 너희 먹을 것을 나누어주라!' 또는 '이웃이 목마르면 마실 물을 나누어주고 헐벗어 추우면 너희가 두 벌 옷을 걸치지 말고 나누어주라!'고...
'그렇지만...'이라고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길어지면 그건 변명이다. 더 복잡해지는 이야기는 궤변을 거쳐 사기에 가깝다. '사회경제론'이 어떻고, '효율적인 방법론'이니, 국가주의, 무슨 이론, 심지어 사람의 심리적 본능한계가 어떻고 등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그것이 역사적 교훈이었고, 인간의 한계임을 모두가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진실이 되어 불편하게 한다. 다만 염치없는 괴물이 되어가는 현실을 온 몸으로 절제하며 버티고, 바깥의 부추김에 혹하여 끌려다니지 않도록 스스로 반성하며 경계해야할 뿐이다.
그런 이들이 점점 뜻을 같이하여 자기와 싸우며 세상을 바꾸는 공동의 단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