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에 대한 여러 이야기 - 페북 김동호목사님글로 인한...
아침 페이스북에 올라온 김동호목사님의 글을 보고
제 생각을 좀 댓글로 달았지요.
그러면서 염려했던대로 누군가의 불평 비슷한 글을 보았지요.
그래서 또 쓴 댓글, 짜장면이 관련된 추가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말의 한계, (생각의 다름일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오죽하면 '귀 있는자는...'이라고까지 서두를 붙이고 말하셨을까? 예수님이...
아래는 그 내용들입니다.
뭐 내용 소개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묵상자료니까요~~
- 김동호목사님의 페북글
김동호
2012.11. 19. 월요일.
1. 어려서 가난했지만 다행히 밥을 굶지는 않았습니다.
2. 식솔이 많지 않아서였습니다. 무녀독남 외아들로 자라다 보니 오히려 넉넉하진 않았어도 모든 먹는 것이 다 저에게 집중되었습니다.
3.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 안정된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보니 오히려 생활이 안정되었습니다.
4.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졌었습니다.
5. 제가 '어디가서 밥 세끼 못 먹으랴?'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6. 어느 날 하나님이 제 마음 속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7. <네가 어떻게 밥 세끼를 먹어?>
8. 그냥 순간 제가 밥 세끼를 걱정없이 먹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9.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면 그냥 그 자리에서 나도 굶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정말 난생 처음 심각하게 해 보았습니다.
10.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하신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11. 그리고 정말 그 기도를 심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2.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는 겸손한 마음이 생기니 일용할 양식이 감사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3. 그제 토요일 아내와 시내에 나갔다가 점심을 제가 자주 가는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었습니다.
14. 냉면 한 그릇을 만 원 받는 집이었습니다.
15. 어려서 저는 설렁탕과 같은 음식을 파는 음식점에 '대중식사'라고 쓴 것을 이해햐지 못했었습니다.
16. 지금 시세로 이야기하면 보통 6, 7천 원 정도하는 설렁탕이 대중이 아무나 큰 부담없이 먹는다는 뜻의 '대중식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17. 그런데 한 그릇에 만 원이나 하는 냉면을 그젠 정말 대중식사로 이해하며 조금은, 아주 쬐끔은 부담스러웠지만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며 먹었습니다.
18. 그것이 새삼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19. 일용할 양식에 감사할 줄 알게 되니 갑자기 감사의 지평이 넓어졌습니다. 세상이 감사 할 것 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20. 감사의 기경이 넓어지니 행복의 지경이 동시에 넓어졌습니다.
21.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겸손한 기도를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세끼 식사하실 때마다 건성으로 기도하지 마시고 정말로 감사해 보세요.
22. 세상이 바뀐답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행복하고 밝고 좋은 세상으로 바뀐답니다. 정말 굿모닝, 굿 애프터눈, 굿 나잇이 된답니다.
- 제가 단 댓글(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어느 분이 말하시는...)
감히 반론은 아닙니다만... 다른 생각도 떠오릅니다.
일용할 음식을 진심으로 감사요? 죄송하지만 상상으로 굶지 않게 된 것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 굶는 것을 종종했고 총각 때도 사나흘씩 양식이 떨어져서 물만 마시기도 했습니다. 실재로 굶고, 양식 떨어지는 불안을 해본 사람을 짐작으로 아는 것처럼 한다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고 자기가 묘사하는 것이 전부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처지의 사람이나 상황을 혹시나 쉽게 아는 것처럼 하지 않아야 할 중요성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남을 도울 때도 그저 부분적으로 공감하거나 내 마음이 하고 싶어서...라고 해주는 것이 오히려 서로가 가장 솔직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을 늘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광야에서 며칠씩 맨 떡을 먹으며 체험하는 심정이면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중요한 것은 밥을 때마다 충분히 먹느냐 건너뛰느냐가 아니고 하나님과 나와 이웃이 함께 한가지로 먹고 마시고 사는지를 공감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밥만 굶지 않도록 챙겨주면 일용할 양식을 감사히 기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자칫 애완동물과 이웃이 같은 자리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예수님은 같이 자고 같이 있는 것을 먹고 마셔주었던 '함께' 였습니다. 종종 자존심과 배려가 사라진 구호를 하는 교회와 신앙의 모습 앞에서 밥을 굶지 않지만 대접받지 못하는 서글픔도 보았습니다. 개인과 개인만이 아니라 나라가 나라에 하는 빈민선교에서도...
너무 끼니에 촛점이 맞추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히나 그러고 싶다면 기아체험을 해보고, 그보다 더 절실하면 그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언행일치의 삶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바라시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의 기도는 굶지 않게된 것을 기준으로 상상하며 다행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 굶게 내버려두지 않으며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모두가 굶는 빈민가에서 내 앞에 놓인 양식을 하나님께 더 감사하는 기도는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위에 어느 분이 시골 농어촌에서 끼니를 수시로 굶고 걱정하는 목회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혹시 그런 분을 직접적으로 안다면 먹을 양식을 나누어 보내면서 내 밥도 앞에 놓고 감사기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아는 분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일을 하는 단체나 움직임에 지지를 하면서 내 밥도 감사하면 될 것입니다.
사실 만원짜리 냉면이 대중음식이 아닌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끼 만원짜리 음식을 마음편히 먹는다는 이야기가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 제주변에 많습니다. 아이들도 있고, 장애자 환자들도 있고, 노인 어르신들도...
하나님이 가장 관심가지시고, 받고 싶은 기도는 부자냐 가난하냐의 상태가 기준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드리는 기도가 아닐까 싶어서 혹 불편하실지도 모를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이 글을 보시고 어느 분이 기아체험이나 꼭 굶는 것을 같이 경험해야만 감사를 드리는거 아니다.
그런 내용으로 좀 불편한 심기로 댓글을 올리셨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그런걸 주장한게 아닌데...
- 어느 분께 드리는 심정으로 추가로 올린 글
제가 올린 글이 목사님이 드신 만원짜리 냉면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데 혹시 그렇게 보시는 분이 계실까봐 조금염려됩니다. 또한 물량만 쏟아붙다가 실패한 어느 단체 같지 않고 그곳에서 같이 살면서 장기적인 자립을 돕는 그물리라 사역을 주관하시는 목사님의 실천에 늘 지지하는 한사람입니다. 제 표현력 부족과 좁은 시선으로 혹여나 흡집나는 일 없기를 추신으로 올립니다.
(추신에 다시 붙이며- 어느 분이 제 염려를 확인시켜주셔서...)
저와 아내가 살아가고 있는 병실에 기초수급자로 희귀병과 투병하고 있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가끔 사먹는 짜장면이나 칼국수를 어느 때는 못 먹습니다.
“돈이 없어서...”
라고 하는 앞에서 우리만 먹기 불편해서 같이 안 먹습니다. 그 돈을 제가 내거나 모아서 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같이 좀 더 기다려주는 것이 훨씬 가까워지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정도 아내의 희귀병으로 5년째 병원에서 살면서 저는 일도 못하고 남의 도움으로 먹고 살고 투병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그 돈을 또 아껴서 그물리라에도 보내고, 제 도움도 필요한 네팔의 한 아이도 후원합니다. 내 나눔조차도 필요한 더 낮은 곳이 있어서입니다.
제게 감사는 그저 서로가 돌아보며 살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 외에는 없습니다. 받는 쪽도 주는 쪽도, 액수도 명분도...
제가 드리고 싶은 요지는 그런 것이었는데 어느 분은 이해가 안 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할 능력 없는데 부족한 걸 모르고 어려운 주제에 손을 대었습니다. 말이 가지는 한계와, 그럼에도 소통의 필요성을 동시에 느낍니다.
(참 묘하게도 제가 올린 이 추가 댓글에 정작 본문의 김동호 목사님께서 '좋아요'를 누르셨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