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래는 땅이 아닌 살얼음판?
<발아래는 땅이 아닌 살얼음...>
딸아이는 주말이라고 충주에서 출발해 청주 병원으로 온다고 문자가 왔다.
병원은 9인실이 만원이다.
빈 침대는 고사하고 간병인용 보조 침대조차 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침대가 비었을 땐 대박!
보조침대라도 빌려서 나와 나란히 잘때는 중박!
오늘 같은 상황은 소박?...
그래서 소박맞은 딸아이는 큰아이 자취방으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
하필 비가 그치지도 않고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라 심란하다.
아내는 오늘이 장청소 하는 일정도 아닌데 자꾸 배가 아프단다.
3일이나 4일째 좌약을 넣고 씨름하는데 오늘은 이틀째,
그냥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거야?”
“...몰라”
“배를 두드려줘? 아님 장갑끼고 빼줘?”
“...몰라”
“약을 넣어?”
“...몰라”
짜증이 확 몰려왔다.
다 모른다고 하면 뭘 해야할지 나는 더 모르는데,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있으면 또 모른척한다고 서운할거고,
그 생각을 하니 더 화가 몰려올라온다.
‘뭘 어쩌라고?
아니, 내 몸도 아니고 무언가 조치를 해주려면 정보는 주어야 뭘 해도 하잖아?‘
아내는 다그치고 짜증내는 내 목소리와 표정에 기어이 눈물폭탄이 터졌다.
나는 더 어떻게될지 모를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정말 싫다, 지겹다... 언제까지 이렇게 복잡하고 무기력하게 살아야 하는걸까?’
긴 시간들이 차곡 차곡 쌓여 다이나마이트처럼 압력이 세지고 있다.
그러다 내 기준이 아닌 아내 기준으로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프다.
신경이 마비되어 정말 모르는 거짓말 같은 상태가...
변이 장에 쌓였는지, 내려와서 못나오고 있는건지, 아님 가스가 차서 그런지,
정말 구분이 안가는 애매함인데 멀쩡한 내게는 그 진실이 바보같이만 보이는거다.
‘아니, 자기 몸을 자기가 모르면 남은 어떻게 알아?
의사가 뭘 해주려고 해도 증상은 말해줘야 처방도하고 바로 치료도 할거아냐!‘
말은 참 옳은 말이지만 태도는 틀렸음을 인정했다.
잔뜩 짜증나고 복잡하고 골이나서 몰아붙이는 느낌을 모를리 없는 아내는
아픈 서러움을 눈물로 쏟아놓는 것이다.
‘미안하다, 그냥 내가 한가지씩 차례로 해볼게, 그중에 맞는 게 있으면 효과를 보겠지뭐’
그러곤 배를 두들기다가, 장갑으로 빼보다가, 기다려보고 또 쓸어보고...
연신 휴지를 뜯어서 눈물 콧물을 닦던 아내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다.
아마도 이라저리 누적된 피로감들이 동기를 만나 터졌나보다.
단단한 땅을 딛고 평화롭게 사는 중이라고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발 아래는 아슬아슬한 살얼음판이었다.
언제고 쨍! 하고 금이가고 갈라져 빠지기 십상인 얇은 얼음판...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프거나 안 아프거나 상관없이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도 말이다.
딸아이를 데리러 우산을 들고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갓다.
이것도 외출이고 바람맞는 나들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우산을 쓰고 걸어오면서 아이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정리해온 진학문제를 들었다.
새롭게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면서 우리 형편에 가능할지 묻는다.
‘...아무래도 아빠가 청심환을 먹어야 하겠지?’
부디 날마다 딛고 가는 이 살얼음판이 잘 견뎌주고,
혹 빠지더라도 다시 올라올 수 있기를 비는 심정으로 하루의 끝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