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아들에게 다녀오는 길

희망으로 2012. 11. 3. 20:03

아들에게 다녀오는 길

병원에서 나오는 김치를 꼬박 통에 모았다. 
벌써 3번째다. 프라스틱 그릇에 가득 모이면 들고 나선다.  
걸어서 25분정도,
큰아이의  자취방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트에서 찌개용 돼지고기도 두어팩사고,

큰아이가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찌개는 부실할수도 있는 자취식단에 영양보충도 될것같아 열심히 모았다. 
내가 어떻게 그런 방법을 알았겠는가. 당연히 아내의 아이디어다. 
추석에 한번 끓여 먹였더니 아주 맛있게 먹는걸 보고 계속하기로 했다. 
뭐 힘든것도 돈 많이 드는것도 아니고...

오늘은 가는길에 포장횟집에 들러 작은 광어회를 샀다. 
어제 끝난 대학 중간고사 시험 보느라 애쓴 큰아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지난번에 한번 사주었더니 아주 잘먹었다. 
그걸 들은 아내는 아들만 사주고 남은 상추만 가져왔다고 며칠을 핀잔주어서 힘들었지만 
이번엔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큰아이가 여러사람들이 모아준 후원금으로 얻은 
이곳 대학주변 원룸으로 이사온지도 벌써 8개월째인데 아직 밥상이 없다. 
그거얼마한다고 안사는냐고 물으면 창피하다. 
아이나 나나 둘다 참 그런데 무심하다. 
오늘도 종이박스 엎어놓고 거기다 올려놓고 먹었다. 
하긴 5년만에 우리집 5식구가 다 모였던  지난 추석에도 그렇게 먹었으니 ㅜ.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참 미안해졌다. 
큰아이에게도, 앞길을 막은 둘째에게도, 
지금 고생중인 막내딸에게도...

정말 이런 부족한 부모가 되고싶은 마음 털끝만큼도 없었다. 
아이들이 불쌍하고 미안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따지면 이렇게 말할거다. 
돈도 환경도, 뒷바라지도 잘 못해줘 아쉽지만 우리처럼 니들 이해해주고 
끔찍히 놀아주고 사랑해주는 부모는 흔한줄 알아? 라고...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도 그 말도 못해줄 상황에 빠졌다. 
그 돈 안들어가고 빽도 재주도 없어도 되는 
같이 지내주기마져 못해줄 상태가  되다니...

가끔은 내가 우리 세아이의 부모가 된게 디게 미안하다. 
당연히 나를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되게한 하나님도 참야속하다. 
대책도 없는 분 같으니라고,

더구나 반쯤은 우리 부모 이유로 가고싶던 학교도 못가게된 
막내딸 나눔이에게 많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글을 쓴다. 
슬프고 기죽은 얼굴로 병원 들어가기가 싫어서, 
그런데 날씨가 제법춥다. 으슬하다.

설마 누가 눈치챌까? 
여지껏 한번도 남의 속도 모르고 속 뒤집어 놓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