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슬픔의 땅에서 피는 기쁨의 꽃'
<슬픔의 땅에 피는 기쁨의 꽃>
인생이란 슬픔의 땅에 기쁨의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동산과 같은가 봅니다.
기본적으론 발 딛은 곳이 슬픔의 땅이지만, 시차를 두고 여기 저기 기쁨을 주는 꽃들이 피어나 그 슬픔을 잊게 해주는 하늘 아래 세상...
어떤 분들은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면서 자녀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함께 사는 힘겨움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문장도 만들어 내나봅니다. 우리는 그 자녀들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부모이며, 동시에 어느 시절에는 그 자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산을 넘으면 산이요, 물을 건너면 또 물입니다. 때론 부모로 힘들고 때로는 자녀로 힘들고, 그보다 열배는 많게, 깊이 우리는 그런 관계에서 오는 힘겨움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기도 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곧추 세우고 출발 ‘땅!’에서 ‘멈춰!’까지 살아내는 인생 길, 그 누구도 대신 못해주고 나도 가 줄 수 없는 제각각지고 가는 일생 말입니다.
찬양곡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지요.
‘오 나는 약한 나그네요,
이 슬픈 세상을 살며
수고도 병도 위험도 없는
내가 가는 저 밝은 곳....‘
이 세상은 슬픈 세상이며 수고와 병, 위험이 있다는 역 표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으면 기본적으로 이 동산은 슬픔에 빠집니다.
기쁨의 꽃들이 수시로 피어 향기를 피우고 화사한 느낌을 만들어가며 견디고 버텨야 하는 슬픔의 땅에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요근래 기쁨의 꽃이 한동안 피지 못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너무 메말라서 그랫는지 알 수 없지만 생짜로 슬픔의 땅위에서 버티느라 몸살을 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간격이 멀거나 너무 듬성 피는 기쁨의 꽃이 힘이 약해서 버거워하며 버티기도 합니다.
자녀들, 부모님들, 혹은 그 비슷한 사이가 된 가족들, 그들이 언제나 기쁨의 꽃을 피워내는 씨앗들이고 꽃 그자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씨앗들이 저절로 자동적으로 반드시 꽃피우고 향기를 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도 생기고 기대만큼 되지 않을 때는 그래서 오히려 실망이 더 커지고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차라리 니가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라는 모진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언젠가는 이 어둡고 축축하며 쓸쓸한 슬픔의 땅을 바꾸어줄 씨앗을 원천적으로 없이 지낸다는 건 아예 희망이 없는 지옥과 같습니다. 비록 우여곡절과 실망이 때때로 몰려오더라도 그럴수록 가슴에 품고 비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할 대상입니다.
가만히 저절로 슬퍼지는 땅 위에서 긴 길을 가는 우리는 기쁨의 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도 ‘근심 중에도 기쁜 일을 주신다’ 고 했습니다.
간격이 멀고 슬픔이 깊었던 날을 보내면서 더 소중해진 기쁨의 씨앗을 떠올려봅니다. 예전에도 활짝 피어서 감격하게 하고, 춤추고 노래하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또 힘을 줄 어느날을 기대하며 잠시의 공백을 넘어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슬픔의 땅에 피는 기쁨의 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