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2012. 7. 31. 11:16

 

 

‘따르릉! 따르릉!’
병실 벽에 붙박이로 있는 인터폰에서 벨이 울렸습니다.
우리는 창문 쪽 침대고 인터폰은 입구 쪽 벽에 있습니다.
9인실이라 거리가 꽤 멀어서 소리 듣고 가는 사이에 끊어지기도 합니다.
늘 바로 곁 침대의 간병인이 수고를 하십니다.
...
“네, 알겠습니다.”
인터폰을 받고난 그 분이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7층에 우편물 왔다고 찾아가라네요!”
나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수요일이야?”
“아니, 화요일,”
주간에 한 번씩 오는 우편물은 늘 수요일에 옵니다.
‘이상하네, ’해와달‘은 어제 왔고, 올 데가 없는데 하루 일찍 왔나?’

7층으로 올라가서 받은 우편물은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단체에서 왔습니다.
그 우편물봉투 안에는 사진 2장과 손으로 쓴 편지 1통,
그리고 위아래도 모르겠는 언어의 편지를 번역한 편지 1통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점심을 도시락으로 바꾸고,
점심값으로 나오는 돈을 모아
우간다의 어린이 한명을 더 후원하게 되었다면서
그 도시락 싸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는 것으로 누군가와 나누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지요.
몰라서 못하고, 쑥스럽다고 못하고,
감정따라 수시로 변해서 꾸준히 못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저도 그러니까 변명삼아 그렇게 믿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떨쳐지지 않는 올가미에 묶였습니다.
어쩌면 늘 받기만 하는 내 처지에 대한 불편했던 맘이
그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지친 선지자에게 먹을 것을 해준
성경 속 과부의 이야기도 기억나고,
벌판에서 자기 가진 떡과 물고기를 내어 놓은 아이 덕분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벌지도 못하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남는 게 아니라 줄여서 작은 나눔이라도 해보자! 였습니다.
하나는 2년 넘도록 사용해오던 인터넷 와이브로를 중단하는 것,
큰 병원은 무선인터넷을 제공하지 않고 한 장소에 설치해줍니다.
주로 휴게실이나 유료 컴퓨터로,
작은 재활병원들은 비용절약을 이유로 그런 거 잘 신경 안 씁니다.

저는 잘 나갈 수 없고 의료부대용품들도 인터넷으로 다 구입해야합니다.
은행이나 관공서 일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해결하기도 하고,
그런데 무선인터넷이 안 터지면 애로가 많아서 아예 월 2만원 정도씩 주고
한국통신이 제공하는 와이브로 무선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중단했습니다. 안테나 2-3개 뜨는 무선을 쓰다가
정 불편하거나 급하면 7층에 마련된 공유기에 연결해서 쓰기로 하고...

또 하나 밤에 늘 걷고 돌아오다 먹던 야식,
그래봐야 라면이나 김밥 하나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9시 이후로 가능하면 안 먹기로 작정했습니다.
덤으로 뱃살도 빠지고 3천원 안팎, 한 달에 열 번 정도 모이면
뭐 다달이 자동이체 되도록 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잊어버렸지요.
오늘 그 봉투속에 3살짜리 사내아이 사진이 제가 보내줘서 고맙다는
대신 쓴 선생님의 편지와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5만원 이내로 특별 선물기부가 된다고 해서
매월 이체와 별도로 보내준 작은 돈이 티셔츠와 신발, 야구모자,
쌀 설탕 비스킷 목욕비누 기름까지 마련되었다고 앞에 쌓아놓고 찍은 사진이.

무지 민망하고 얼굴 화끈거렸습니다.
저는 몇 십백 몇 백배 많은 후원을 받고도
이런 사진 한 번 찍어 보내지 못했는데...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건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삶이 제가 지레 늘어질 뻔 한 삶을 건져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는 것입니다.
제게 방법과 마음을 직접 보여주고 선행해준 덕분에
오늘 이 작은 기쁨과 사람다운 자존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이 있습니다만
저는 저만의 별명으로 그 아이를 부르려고 합니다.
비용은 제가 내지만 동기도 자신감도 준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네팔캐미보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