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주고 돈 주고, 몸도 주고...
마음 주고 돈 주고, 몸도 주고...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 김동호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가슴을 찢지 말고 지갑을 찢어라!’라고,
국민일보 파업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을 돕자는 권유의 글 중에
예전 이야기 하나를 하셨습니다.
<1. 몇 달전 말라위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 하나가 말라위에서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저에게 '가슴이 찢어 집니다.'라는 글을 보냈었습니다.
2. 제가 그 글을 제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페이스 북 친구들이 함께 마음 아파해 주었습니다. 함께 가슴을 찢어 주었습니다.
3. 저는 그것만으로 마음이 차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찢는 것 만으로는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4. 그래서 제가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5. <가슴을 찢지 말고 지갑을 찢어라>
6. 그 글에 선동당한 친구들이 지갑을 찢기 시작하여 거의 8,000만원에 가까운 돈이 모금 되었었습니다.
7. money talk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세속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 말을 좋아합니다. 저는 지갑이 찢겨야만 가슴이 찢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저는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지갑을 걸고?'라고 묻곤합니다. 저는 지갑의 주인이 하나님이셔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 돈을 빼고 입으로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 이하 생략>
어떤 분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배고픈 자를 굶겨 보내면서 사랑한다 말하는 뻔뻔한 위선자가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저도 돌아보니 참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죄송하네요. 지갑의 주인이 하나님이라야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하시는데 좀 찔립니다. 저는 아무 일도 할 수없게 된지가 4년째입니다. 아내가 24시간 저를 병상 옆에 붙드는 바람에 그야말로 10원 한장도 돈을 벌 수 없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저는 제 지갑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지갑을 지금까지 축내고 있는 중입니다. 때론 방송을 통하여, 때론 국가가 복지라는 이름을 통하여! 그렇게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우리에게 옮겨 주시는 돈으로 그야말로 money talk가 아니라 money live로... 심지어는 한꺼번에 들어가는 2천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방송국에서 지원받고 그 십일조도 못내어 다시 연체 후 기독교방송의 모금으로 십일조 2백만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기 전에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말라위에 오랫동안 좀바신학교라는 곳을 지원하는 송금도 했습니다. 그 돈으로 선교사님께서 그곳 주민들의 생활비와 장학금으로 잘 활용해주셨습니다. 아마 그랬던 기억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한 때는 누가 누구를 돕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서로 교대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다! 하는 고백입니다. money talk는 love & life의 다른 이름이라는...“>
마음만 주고 지갑은 줄 수 없다는 누구나 가지기 쉬운 심리를 한걸음 더 나가보자는
목사님의 이끄시는 가르침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이 가야 정상적인 사랑입니다.
오죽하면 성경에서 역설적으로 말했을까요?
‘너희 재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위 그림은 존 클리어의 명화에 나오는 ‘고다이바 부인’ 이라는 그림입니다.
아래는 바로 그 그림의 주인공인 고다이바 부인의 동상입니다.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코벤트리의 대성당 앞에는 그 근엄한 분위기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나체의 여인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11세기 중세 영국 코벤트리시의 영주였던 레오프릭 3세의 부인인 고다이바(Godiva). 레오프릭은 당대의 가혹한 탐관오리로, 과도하게 세금을 징수해 소작농들의 등뼈를 휘게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백작부인은 영주의 혹독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이 사실을 백작에게 알리고 몇 번씩이나 세금을 감면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러나 백작은 부인의 간청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지나는 말로 “당신이 알몸뚱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 시내 거리를 한 바퀴 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습니다.
백작은 부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속셈으로 내뱉은 한마디이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다가 “공중의 행복을 위하는 일이라면 알몸으로 말을 탄들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말을 탈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번트리 시의 시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감격한 나머지 부인이 말을 타고 거리를 돌 때에는
어느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창문과 덧문과 커튼을 굳게 닫고 내다보지 않기로 결의를 하였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은 긴 머리카락을 이용해 앞을 가린 다음 알몸으로 말을 타고 느릿느릿 시내 거리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도 약속대로 말을 타고 거리를 누비는 고다이바 부인을 창틈으로라도 엿보는 사람 하나 없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호기심 많은 재단사 톰(Tom)이라는 사나이만은 시민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창문 틈으로 그 부인의 알몸을 엿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 톰이라는 사나이는 그만 두 눈이 멀어 버렸고 여기서 관음증 환자를 의미하는 '엿보는 톰(Peeping Tom)' 이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면 귀족의 품위와 개인의 수치조차도 감수하고 행동으로 옮긴 그 고다이바 부인을 기리기 위해 나중에 기념 동전도 만들고 명품 초코렛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음 주고 돈 주고, 마침내는 몸으로 삶을 사는 정말 글자 그대로 ‘헌신’하는 이들은 넓게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안주하는 행복에 머물지 못합니다.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외면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멀리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지갑도 헐고 비어지고, 명예와 몸뚱이마저 언젠가는 놓고 사라질 결국을 이미 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끝에 가서 볼 세상을 의식하며, 지금 위세당당할 것 같은 몇가지들에 메이지 않습니다. 지갑, 안락함, 몸의 아름다움 등...
마음 주고 돈 주고, 몸도 주고 얻는 하나님의 세상이 분명 그보다 값진 것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자녀들에게, 혹은 가족들에겐 그런 삶을 살기도 합니다.
마음 주고, 돈 아끼지 않으며, 몸으로 할 모든 고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범위가 좀 더 넓게, 순간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 주고 돈 주고, 몸도 줍시다!
누군가가 똑같은 삶으로 나를 넘치게 만드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