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듣는 피아노라이브...
오늘도 그리 만만치 않은 하루,
아픈 사람의 기운없다, 온몸 쑤신다. 어지럽다...
그 신음소리 들어주고 마음 같이 겪느라 지쳤다.
저녁 대충 먹이고 난 먹지도 않고 상을 내놓았다.
기다렸다가 소변 넬라톤을 하자마자 거리로 나섰다.
그래야 두시간 정도는 휘휘 돌 수가 있으니...
터미널 건너편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갔다.
여행가서 시장통이나 새벽거리에서 꼭 먹어보려던 국수,
며칠전 갔더니 마감시간 10분이 지났다고 거절당했다.
오늘은 기어이 한그릇 비우고
아래 층 영풍문고가서 책 구경(진짜 사지 않고 구경만!)했다.
뭔 놈의 책은 그리 쏟아지는지,
시립도서관 대출 못한지 4년이 지나니 온통 신간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그래도 좀 늦어도 따라가며 보았는데,
책 보는 시간은 남들 마작하고 게임하는 시간처럼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부랴 나오다가 화장실을 들렀는데
아~~ 벽 넘어 뒤쪽에서 들리는 생음악 피아노연주....
이게 얼마만이던가?
염치불구하고 문 잠그고 좌변기에 앉아 푹 빠져들었다.
두 곡 정도 듣다보니 가슴이 촉촉해진다.
이것도 괜찮다.
던 들어가지않고 생음악을 방해없이 조용히 들을수 있다니,
갑자기 보물상자, 아니, 보물선을 발견한듯 기쁘다.
가끔 생각나면 이 자리에 와서 무료 연주를 들어야겠다.
말이 화장실이지 최근 지은 1년도 안된 큰 건물의 깨끗함!
끝날무렵 누군가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들어와
쉬야를 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옷내리고 시키고 옷 올리고,
갑자기 10년전 15년전 영상이 떠오른다.
어디 외출을 하면 아이들 화장실 데려가는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아들 둘은 당연하고 딸아이 나눔이까지!
영화속의 기법, 자기가 자기의 옛날 씬을 바라보는 듯
예전의 기억으로 빨려들어갔다.
여기 좌변기에 앉아 15년전의 저 모습은 보는데
그때 15년전에 오늘 나의 이 모습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병원을 떠돌며 살게 될줄을,
아마 꿈에도 몰랐을게다.
갑자기 이국적인 쌀국수 한그릇 먹고
쏟아진 신간 잉크냄새 맡고,
손에서 귀로 바로 듣는 생음악 감상하고!
그리 나쁘지는 않은 하루의 마감으로 마음을 가볍게 해본다.
그리곤 총총거리며 병원으로 돌아온다는거 하나만 빼면...
다음에 나눔이가 오면 데리고
이 코스를 같이 한번 다녀야겠다.
그때는 매운 퍼가(닭고기 국물의 쌀국수)도 먹고
책도 한 두권 사고,
화장실라이브는 비밀로 두고 앞 카페에서
원두커피나 한잔하고 들어가던지 해야겠다.
두시간 안에 하고 들어가려면 서둘러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