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더 이상 안약을 넣는 의미가 없겠네요...

희망으로 2012. 1. 18. 22:35

더 이상 안약을 넣는 게 의미가 없겠네요

 

눈을 검사한 의사 선생님은 확정적으로 말하신다.

안압도 너무 떨어져서 눈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측정자를 가지고 양쪽 눈을 재어보더니 2미리정도 오른쪽 눈이

뒤로 함몰되어 들어갔다고 판정하셨다.

 

손으로 대어보아도 눈동자가 물렁거리고 힘이 없고

앞으로 좀 더 안구가 줄어들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일산 국립암센터로 올라가기 전부터도 아내는

자꾸만 손으로 만져보며 눈이 들어간다고 불안해했다.

그냥 육안으로도 이미 오른쪽 눈이 꺼져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었다.

 

의사 선생님의 이은 설명은 망막동맥혈관이 완전 폐쇄되고

혈관염이 심해졌다가 말라버려 안구 속에 물을 만들지 못해

눈이 마르고 안구자체가 줄어들어가고 있다는 했다.

 

더 이상 약도 소용없고 치료법도 없어 기껏 미용상 보완하려면

눈의 내용물을 빼내고 인공 안구를 넣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웃음인지 괜찮다는 지 표정이 밝은듯하던 아내는

진료실을 나와 한참을 멍하더니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고 힘들다는 표정으로 꾹 참으며 흘리는 눈물...

 

멈추지 않은 슬픔 때문에 엘리베이터로 이동을 하는 중에도 울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도 운다.

그러고보니 이곳은 전에 입원해있을 때 심히 복받치는 맘을 추스르지 못해

주일날 예배 후 몰래 와서 꺽꺽 울던 곳이다.

2년 반쯤 전에...

 

1층 약을 타는 곳으로 내려와서도 아내는 감당이 안 되는지

벽을 향해 휠체어를 세워달라고 했다.

나는 그냥 손수건을 꺼내 그저 손에 쥐어주고 수납창구로 갔다.

번호표를 뽑고 수납을 하고 진료의뢰서와 약을 타고 돌아올 동안에도

아직 아내는 서러움의 눈물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여기도 2009년 입원 중 어느 토요일 조용한 오후에

둘이서 남몰래 구석이라고 와서 펑펑 울고 있는데 담당선생님이

양복차림으로 저쪽에서 다가와 우리를 다독여주던 곳이다.

볼일이 있어 병원으로 나왔다가 우리를 찾으신 모양이다.

창피하지만 그칠 수가 없어서

선생님을 세워놓고도 한참을 울었던 곳,

 

그렇게 여기저기 힘들었던 장소에서

오늘은 아내가 또 울고 있다.

그냥 차츰 사라져가는 시력은 받아들였지만,

안구마저 작아지고 뒤로 들어가는 이유를 듣고,

거의 속수무책이라는 최종진단을 듣고 보니

참았던 서러움이 몰려오는가 보다.

아니면 두려운 것일까?...

 

오전에 피검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분들과,

심지어 방을 얻을 모금까지 해주시는 분 때문에 감사했다.

잘 참고 견디어가는 우리가 대견하다며 잘해보자고 기뻐했는데,

오후의 안과 진료를 받으면서 다시 먹구름이 몰아친 것이다.

 

내려 오는 차안에서 아내는 한기로 오돌오돌 떨었다.

겉옷위에 내 겉옷까지 덮고,

그러고도 이불을 꺼내 3중으로 덮어싸고 히터를 켜고,

몸만 추워서 그럴까? 맘도 추우니 더 그러겠지...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천냥이라는데,

그러면 한쪽 눈이 사라진 나는 몸값이 4500냥이 없어진거네

그렇게 자조적으로 한숨짓는 아내에게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몸이 만 냥인데 영혼은 구만 냥이겠지? ,

아무렴 몸값보다는 영혼 값이 비쌀 거야. 그러니 떨어진 몸값 대신에

내가 영혼을 더 값지게 해줄게, 구만 오천 냥 쯤 나가게 해줄게,

반짝 반짝 닦고 광이 나게 하면 더 비싸질 거야!“

“........”

내가 더 사랑해줄게, 광이 나도록, 그러니 다시 힘내자

 

그것도 위로라고, 하지만 아내는 기발한 계산과

더 사랑해준다는 말에 싱긋 웃었던가? 그랬던가?...

 

사실 아담은 자기에게로 오는 하와를 보면서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로다!’ 라고 반겼다.

하나님이 혼자 지내는 아담이 외롭고 안 돼보여서

반려자를 만들어주기로 하고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다.

그러니 뼈중의 뼈가 맞다.

그 말은 또 하와를 자기 몸처럼 반쪽으로 확신하고

기뻐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내가 혼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돌며 외롭게 지내는걸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아내를 내게 보내주시기로 하셨다.

다만 그 댓가를 치러야 제대로 자격이 생기기 때문인지,

대충 100일 정도 새벽에 깨워서 기도를 시키셨다.

그리고 아내를 만났다.

그 덕분에 나는 그 후 수십 년을 지독한 외로움과 홀로 지내지 않고

가족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맞다.

아니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견디고 오늘까지 올 수 있었을까?

 

적어도 아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한 눈 팔지 않고

아내를 내 몸처럼 아파하고 기뻐하며 살 작정이다.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나는 천국에 갈 거야!

아픈 당신 곁에서 변함없이 잘 지낸 점수로 난 천국에 갈 거야!“

 

근데 혹시 천국에서 나 보면 고개 싹! 돌리고 피해가는거 아냐?

살아서 나 땜에 고생한거 미워서 모른 척 피하면 어쩌지?“

 

아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곳이면 그게 천국이겠어? 지옥이지! 그러면서~

 

다행이다. 무능하고 가난해서 고생시킨,

나에 대한 원망이나 회한은 없나보다.

 

이제 또 며칠은 검사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음 졸일 것이다.

그 먼 길을 다녀오느라 녹초가 되고,

새로운 진단과 합병증상들로 우울해지는 외래 검사가는 날,

무서워진다,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이 점점...

 

229일 또 예약이 되었다.

달력을 보며 하루 하루 다가오는 그 날이

우리를 미리부터 또 긴장시키겠지?

한방에 훅! 가는 달콤한 유혹이 또 부러워진다.

이렇게 야금야금 알면서 당하고,

당하면서 멀쩡한 제 정신으로 한 계단씩 내려가는

끔찍한 긴 날들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