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읽고/이 영화 보세요!

자폐증 영화 '템플 그랜딘'을 보고 - 다름과 모자람...

희망으로 2011. 11. 11. 18:34

다른 것이지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자폐증을 극복하며 사는 실화 영화, ‘템플 그랜딘을 보고서)


저도 날 때부터 달랐습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태어나는 법이 없으니 당연한건가요?

그리고 네살 때까지 말을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오래 살지못할지 모른다 생각해서 출생신고도 않고

해를 넘겼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때 병원을 다닐 형편이 되었거나,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면 십중팔구

자폐증 진단을 내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템플 그랜딘 만큼은 아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다름이 모자람은 아닙니다.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비슷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이

모자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수평적으로 다른 모습이 수직적으로 아래 나 위로 자리매김을 하고

생각과 행동, 자격, 대우, 심지어는 사랑 받는 것까지 모든 점에서 차별을 하는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않고,

다름은 다름이고, 때로는 그 다름이 더 귀하고 자랑스럽다고 인정한 사람들,

그랬기 때문에 결과도 다르게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혹은 반대로 다름이 일어납니다.

나는 불행한데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고,

나는 머리도 안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다 똑똑해보이고,

나는 몸도 약하고 볼폼없는데 다른 사람은 멋져보입니다.

내 손에 떡은 너무 작고 남의 떡은 커보여서...

기죽고 한숨쉬고 우울하고...


이것도 하나의 다름일 뿐 나만 모자람은 아니라고 인정해야합니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한 나만의 재능이나 특별한 심성이 있습니다.

정말 단 한가지도 그런거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하나님을 향하여 몹시 심하게 항의를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템플 그랜딘에게도 비슷한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자기만 다른줄 알았는데,

그래서 외롭다 생각할 뻔 했는데,

유일하게 자기의 작품을 보여주고 초대하고 싶은 친구,


그 친구는 앞을 보지 못하고 듣는 남다름을 가졌습니다.

템플 그랜딘이 보는 것으로 남달랐듯 소리로 남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

그 친구 때문에 엄마에게도 이모에게도, 

그 누구도 자기를 만지지 못하게 하던 벽에서 탈출합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 두렵지만 팔을 내주고,

나중에는 엄마를 위해서 아주 살짝이지만 포옹하도록 몸을 내어밉니다.































그러나 다름이 모자람이 아니라는 말은 정말 말로 끝나기도 합니다.

부족하고 힘겨운 사람들이 자신감도 사라지고 주눅들어 정말 모자라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찍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모자라지 않고 단지 다른 사람으로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혼자 버려저서는 안됩니다.

가족과 친구와 학교, 사회가 서로 인정하고 받아주어야만 가능합니다.

템플 그랜딘의 엄마, 고등학교 과학선생님, 일하면서 자신감을 얻게해준 이모,

비슷한 남다름으로 다가와준 안보이는 친구, 재능을 인정해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그 많은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공정한 평가 덕분에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느낌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그런 가족이고 이웃이며,

동시에 스스로 남다른 약자일 수 있다는 역할의 다중성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를 도와서 세워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바로 세워지고 극복을 해나가는 

주인공이라는 엄연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