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어머니인가? 다비다 이신 도르가님
바람처럼 왔다가 그리움 남긴 어머니
“어디 계시나요? 잘 안보이는데요?”
“버스 타는 쪽 공중전화 박스”
“아~ 찾았어요! 그 자리에 계세요!”
그렇게 만나 손을 꼭 잡았지요.
따스하고 주름진 손등,
작아지시고 불편해지신 체구...
병원 근처 과일가게를 기어이 가서
병실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바나나랑 귤을
박스로 샀습니다.
이렇게 많이 안사도 된다는데
넉넉한 마음, 모두 나누어 먹어야한다며
오지도 않은 딸래미 나눔이까지 꼭 주랍니다.
누워서 맞을 수밖에 없는 아내를
꼬옥 안으시며 얼굴색이 좋다고,
환자 같지 않게 밝고 훤하다고 칭찬하십니다.
가져오신 여러 가지 약들을 다 설명하시고
멀리서부터 들고 오신 선물들을 주십니다.
먹을 것, 치료에 보탬 될 약들,
나눔이 선물로 성탄카드 한보따리 용돈까지,
빠듯한 병원비 보태라고 봉투까지 주셨습니다.
아마 한동안 용돈이 모자라 불편하실지 모릅니다.
덤으로 또 누군가의 심부름도 해주셨습니다.
이쁘게 적힌 편지와 귀한 선물을,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기어이 당신이 직접 내신 음식 값은 그렇다치고
다리가 불편하신데 식탁이 없는 곳이라
좌식 등받이 의자에
방석을 다섯 개나 쌓고 간신히 앉으셨습니다.
모자란 생각 부족한 배려로 미안했습니다.
그럼에도 맛있게 먹어주신 그 고마움
역시 사랑의 마음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돌아가실 서울행 버스 좌석까지 가방을 들어드리고
정말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데,
또 언제 뵐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발이 안떨어집니다.
‘나중에 천국서 만나자’ 하시는 말씀이
그저가 아니라 실감난다는 게 슬펐습니다.
겨우 생수 한병 사서 다시 올라가 드렸습니다.
아무 것도 해드릴게 없네요. 정말로...
그렇게 어머니는 떠나셨습니다.
처음으로 얼굴을 뵈고,
처음으로 손을 잡아 본 믿음의 어머니 같은
‘도르가’님입니다.
병원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그럽니다.
안 울려고 했는데, 올 2월14일 발렌타이날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신 뒤의 마음을 듣고
기어이 울고 말았답니다.
20년을 곁에서 지켜드릴 때 많이 힘들었는데도
안 계신 지금 그때가 정말 그립다고,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병실에 같이 계신 분들이 물었습니다.
‘친정 엄마?’
‘예!’
제가 그랬습니다.
도르가님도 나오다 물어보시는 분께
그렇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아내도 믿음을 나누는 친정엄마 같은 분을
참 많이 필요로 하고 그리웠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팔 안에서 만나는 새 가족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서...
-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 사도행전 9장 36절,
그 도르가 입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던 그가 병들어 죽었을 때
베드로가 무릎을 끓고 기도하고 일어나라! 하매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던 믿음의 어머니,
다비다!
정말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선행과 구제를 위해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비웠습니다.
'다비다' 이름 그대로...
다비다!
살아서도 이웃을 위해 가족을 위해
늘 빌고 빌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임하기를,
그러니 병들고 죽었을때도
베드로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다비다' 이름 그대로...
제게 늘 그 이름으로 기억될것입니다.
'다비다' 이신 도르가님!
부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