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저녁 7시 30분부터 11시까지 걸린 장청소...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자꾸 까스가 차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고,
"오늘이 며칠째야?"
"3일째인데..."
"벌써? 참 날짜 잘간다, 하루는 길면서도"
간호사실로 가서 장청소를 위한 좌약을 두개 타왔다.
다른 날은 6시30분에 늘 좌약을 넣었는데 오늘은 한시간이 늦었다.
멸균장갑과 튜브젤, 배변용 새 기저귀, 비닐봉지 티슈등을 꺼내 준비하고
침대를 가리는 커텐을 쳤다.
이런 처치를 한지도 벌써 3년째,
참 많이도 했는데도 아직 가볍지가 않다.
좌약을 넣고 기저귀를 교체하고 기다리기를 한참...
전에는 삼십분에서 늦어도 한시간이면 신호가 오고
부리나게 화장실로 태워갔지만 요즘은 점점 늦어진다.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다시 두시간까지!
그러더니 오늘은 두시간이 더 지나가도록 대기하는데
계속 살살 아프기만하고 까스가 안나온단다.
어느덧 두시간 반이 지나는 10시...
자꾸 불안해진다. 약의 내성이 생겨 말을 안듣는걸까?
아님 장의 마비 정도가 더 심해져가서 효력이 없는걸까?
혹시 요즘 계속먹는 설사약 때문에 그런걸까?
선무당의 점괘처럼 답답한 무지가 속상한다.
드디어 배가 많이 아프고 갈 신호가 왔다.
병실 취침시간으로 불이 다 꺼져버린 밤 10시15분...
조용히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비상용품을 담은 쌕을 싣고
장애인화장실로 갔다.
여기서부터 나의 밤중 노동은 시작된다.
힘들게 끙끙거리는 아내 못지않게 늘 땀으로 다 젖기 일쑤인
반복되는 일들이...
저혈압때문에 오는 현기증을 늦추느라 쉴새없이 다리를 주무르고
한편 숙였다 일어났다를 교대로 하는 아내를 도와야한다.
일어나면 배의 아랫부분을 주먹쥐고 통통 두드려야한다.
장이 요동치는걸 물리적으로 돕는거다.
국립재활원 중추척수장애인 배변 요령교본에 나오는 이론이다.
허리를 숙이면 그때는 등뒤를 쓸어내리고
위에서 아래로 두드리며 내려오기도하고,
고관절 위치쯤을 꾹꾹 누르기도하고 마사지도 한다.
그래도 안나올 경우는 비상쌕에서 위생비닐장갑을 두겹끼고
젤을 발라서 직접 항문으로 손을 넣어 변을 빼내거나 수지자극법을 한다.
오늘은 그것은 안하고 나머지 보조만 하면서 연신 부채질을 한다.
이게 땀 흘리지 않고 버티기 힘든 중노동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두드리는 중에 잠근 문을 누가 두드린다.
"혹시 토하는 중이예요?"
간호사의 목소리다.
늦은 시간 계속 등 두드리는 소리가 30분 가까이 들리니 불안했나보다.
사실 간호사들도 겪어보지 못한 이 고충을 자세히 모른다.
"여보 간호사도 3일마다 치르는 이 고통스러운 장청소(배변)을 모르겠지?"
"그러겠지, 이론만 배웠지 본인이 안겪으면 실감나겠어?"
그렇다.
안 겪어본 사람은 죽기보다 싫은 그 3일마다의 고생스럽고 비참해지는
이 심정을 모른다.
그러니 성하면서도 그 성한 일들이 얼마나 축복인지도 모른다.
"공평하네 뭐~,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줄은 실감못해서 못 누리고,
알고 인정하는 사람은 다시는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채 살아야하고..."
간신히 끝났다 싶어 삼십분만에 휠체어로 옮겨 태웠는데,
"잠깐만... 배가 또 아파,"
...오늘도 2차를 가야할 모양이다.
한번에 끝나면 그래도 나은데 간혹은 다시 나오고, 세번씩도 나온다.
이미 지쳐 다시는 변기에 앉아서 버틸힘도 없는데...
그럼 할수없이 휠체어를 눞혀 침대처럼 만들고 그대로 누인채
바닥에 면패드를 깔고 기저귀를 갈아가며 일을 처리한다.
종이화장지와 물티슈, 비닐봉지를 비상쌕에서 꺼내 옆에다 놓고...
그러기를 또 30분,
어느새 밤 11시15분이 넘어간다.
나도 땀으로 젖고 지쳐 휠체어에 머리를 기대어 쉬는데
아내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
"미안해서..."
"아니야, 차라리 고맙다고 해, 미안해! 보단
고맙다! 소리가 더 기분 좋을것 같은데?"
그렇게 병실로 돌아오니 캄캄한 방에 잠든 사람들 숨소리가 가득하다.
창밖엔 네온싸인 불들이 반짝거리며 도시의 밤을 연출하고,
아침부터 내린 비가 아직도 길과 옥상들을 적시고 있다.
이렇게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까?
집사람은 가끔 도망가라고 말하는데,
난 그런소리 말라고 큰소리치는데,
자꾸 그 말이 메아리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