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2011. 9. 19. 00:45


나그네와 순례자

어제 예배시간에 말씀 중간에 목사님이 노래를 부르셨다.
자주 설교 중간에 보통 두 세곡씩 부르시는 방식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임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나그네설음'이라는 우리 옛노래다.

나도 예전에 이 '나그네'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성경에서도 참 자주 사용하고, 모세의 큰 아들 이름도 
'나그네'라는 뜻을 가진  게르솜 이었다.
비슷한 의미의 유목민, 부평초 등도 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이 단어가 조금씩 사용하기 싫어졌다.
대신 그 의미를 말하고 싶으면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해졌다.
'순례자'...

예배를 드리면서도 '나그네'라는 단어 대신 
'순례자'라고 사용해주면 더 좋겠다 싶은 불만에 가까운 심정이 드니
변덕이 심한건지,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그네'와 무엇이 다른걸까?

"나는 순례자 낯선 나라에 언젠가 집에 돌아가리 
어두운 세상 방황치 않고 예수와 함께 돌아가리 
나는 순례자 돌아가리 날 기다리는 밝은 곳에.."

이 가사가 '나는 순례자'라는 노래말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싫어지는건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나그네'라고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런 것이다.
정처없이, 춥고 배고프기도 하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구름따라 바람따라 흐르는...
혹은 힘들고 괴롭기만 하면서 허무한 어떤 세상살이 등등...

떠나온 곳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면서,
슬픔과 고단함만을 안고 다니다 어디서 끝이 나는 그런 인생,

그러나 '순례자'는 느낌이 조금 다른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목적지가 분명하고,
어떤 식으로 가야하는지, 그 과정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가야하는지 늘 되새겨보면서 간다는 것,
또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지켜보고 도와준다는걸 믿는 것,

이 두가지 다른 느낌이 가져오는 결과는 엄청 달라진다.
어느 단어를 우리 인생의 하루 하루에 붙이며 사는가에 따라...
비록 곁에서 얼핏보는 외관으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들여다보면 다르고, 겪어보면 더 다르고,
끝에 이르러보면 엄청나게 달라진다.

무슨 언어학적 전문해석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는 선입견, 말의 뉘앙스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적으로, 사전적 의미로 따지며 논쟁하지 않았으면 바란다.

그냥 단순히게 와닿는 이 다른 단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그 느낌대로 우리의 감정과 생활내용을 동화시키기도 한다.
말이 씨가 된다! 는 말처럼,
혹은 말하는대로 생각하게되고, 생각하는대로 살게 되는 경향...

교회나 신앙의 차원에서 '나그네'보다 '순례자'라는 자기 정의를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 참에 '전국 순례자 사용 운동' 단체라도 만들까?
그 초대 제안자로 기록도 한번 남겨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