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비 맞으며 가는 농협 길

희망으로 2011. 8. 1. 18:46

위기의 순간,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시는 분,

 

벌써 일주일째,

장이 탈이 난건지 위가 탈이 난건지

물처럼 쏟아대는 설사와 복통으로

밥은 물론이고, 날 것은 채소 과일도 못먹습니다.

그밖에도 짠 거, 매운 거, 기름진 거 다 빼고

죽만 사서 먹고 지내는 중입니다.

본죽 여사장님은 내용도 모르시고

이틀치씩 사가는 제게 이럽니다.

벌써 다 드셨어요? 죽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

 

재활치료도 힘들어지고,

간단한 양치 세면조차 침대에서 해결할 정도로 지치니

목욕도 못한 채 여러 날이 지나갑니다.

재활치료를 못하니 목과 어깨로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약만 추가하다보니 속이 울렁거려 이래저래 고역입니다.

병원생활 중에도 좀 좋거나 더 나쁜 날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나쁜 중에 더 나쁜 순간들입니다.

 

마침내 방사선 사진 검사가 떨어지고

그걸로는 원인도 못 찾고 해결도 못하는 거

난치병 환자로 석 삼년이 넘다보니

아내도 알고 짜증내며 말합니다.

말하면 뭐해, 듣지도 않는 약만 계속 주는 걸...’

하긴 그렇게 쉽게 원인을 찾고 처방을 할 수 있으면

이 병을 희귀난치병으로 포함도 안했을 겁니다.

 

계속되는 비로 양말이랑 빨래가 밀리는데

환자복마져 없어 빨아 입어야할 판입니다.

할 수없이 기계건조를 하러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멀리 있는 빨래방을 갔다 왔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큰 병원은 건물 안에 기계건조기가 있지만

작은 병원은 단지 옥상이 있을 뿐입니다.

속칭 환경보호 자원절약 자연 건조기~~ㅎㅎ

 

문제는 그런 것보다 돌아가며 발생하는 통증들과

점점 무거워져가는 아내와 나의 고단함 들입니다.

죽을 종이컵 하나정도 채 못 먹는 사람을 앞에 놓고

난들 밥이 꿀맛도 아닌데 식사가 편치 않습니다.

억지로 먹은 끼니들이 위장에서 돌처럼 굴러다니고

공연한 울화통들이 누르면 튀어 오르고,

고개를 돌리면 따라오고...

정말 옥상에서 뛰어내려버릴까 하면서

맨 정신에는 도저히 상상도 안할 생각을 홧김에 합니다.

 

결국 오늘도 점심밥은 손도 못 대고

뚜겅을 열지도 않은 채 내 놓고 누워버렸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뒤치다꺼리다가 달리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이게 누군가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 같다??’

조금만 좋은 일이 생기거나,

아픈 몸이 회복이 좀 될 만하면 꼭 무슨 안 좋은 일이 따라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어느 출판사 사장님이 우리가 투병하면서 쓴 일기들을

판매용 책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순전히 그분이 비용을 다 내면서!

유명출판사에서는 돈벌이될 책도 아닌데 해줄리 없고

내 형편에 자비로 내기도 힘든 일인데...

신세를 진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드리기도 하고

혹시 나중에 좀 나아지면 병원이나 교회에서 간증이라도 할 때

나누어드리는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호사다마인가?

아님 감사의 마음으로 더 열심히 신앙인의 자세로 살겠다는

각오를 시샘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회복을 회의적으로 만드는

어둔 날들이 계속 무게를 더하는지...

 

오래 쌓이고 묻혀있던 피로들이 울분처럼 터지는데

먹고 기운내야지 안되겠다! 하고

요기라도 하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갑에는 천원짜리 한 장도 없습니다.

방금 전 세탁실에 가서 탁 털어

빨래를 건조하느라 쓴 걸 모르고...

 

농협으로 통장에 든 몇 만원이라도 찾으려고

식당을 지나쳐 걸어갑니다.

우산도 안가지고 나왔는데 지겨운 비는 또 내립니다.

후두둑!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에라! 일부러 나온 건 아니지만

이참에 비라도 흠뻑 맞지 뭐. 그러고 갔습니다.

 

농협에 들어가서 잔액을 확인하는데

순간 멈칫하고 멍해졌습니다.

고작 십만원 미만이 있어야할 통장에

그 몇배가 넘는 잔액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궁금해 내역을 보니 어느 분들이 보내셨습니다.

늘 말도 안 되는 과분한 원고료와, (정말 염치가 없습니다)

며칠 전 쪽지로 계좌번호를 좀 알려달라고 연락을 주신 분입니다.

우리를 보니 자기는 잘 지내는 것 같다고 조금 나누고 싶다면서...

그 마음이 고마워서 마침 책도 나오면 보내드려야지 생각했고,

책값 미리 받는 셈치고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상보다 몇배는 많은 입금액수를 보고 좀 놀랐습니다.

오후 세시의 은행 입출금 기계 앞에서 뒤에 사람들이 줄 서있는데도

비켜줄 생각도 못하고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것은 고마워서이기도 하지만 꼭 그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선한 희망과 어두운 절망의 힘이 줄다리기 하다가

악한 힘이 우리를 흔들어놓고 거의 무너지게 생겼는데,

굴복하기 직전의 전쟁터에 하얀 빛 폭탄이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

 

봐라, 내가 니들 버린 거 아니다,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잡아 먹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거다!‘

라고 말씀하는 하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일을 실재로 실행해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같이 몰려왔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빗방울은 계속 떨어졌지만

이젠 슬프지 않았습니다.

아내나 내가 그만한 돈 때문에 죽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만한 돈만 있으면 걱정 없이 살아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끌려가던 길을 터닝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의심스럽고 원망스러운 갈림길에서

이정표 하나를 발견한 기쁨입니다.

아주 약해진 사람들에겐 사소한 작은 동기 하나도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 오늘 이 일이 우리에게 그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 전에도 여러 번 고개를 넘었는데 이번에도 넘을 수 있을거야!’

그 마음의 의욕만 생기면 정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설사 죽음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어느 누가 안 죽는 사람이 있던가요?

아무리 아프지 않고 실패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마음으로 무너지면 오지 않은 절망과 패배도 불러들이게 됩니다.

신앙인으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다. 항상...

오늘 그 마음을 지키는데 그 분들은 심지에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밝히는 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염려도 되지만

오늘 너무도 중요한 찰나에

말할 수 없는 큰 증거가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인사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전에 KBSCBS에 모금방송 나가고

아주 많은 지원금을 받을 때도

이렇게 큰 힘으로 와 닿지는 않았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갈말과 또 이름도 모르는 분께

힘을 내서 쉽게 어둠의 기운으로 끌려가지 않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