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많이 힘드셨지요?
하나님 많이 힘드셨지요?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긴급 도움 요청! 그러고 문자가 왔는데 바로 답장을 못했더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같은 학년 친구네 집에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며칠 째 천장 판자 틈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꺼내주셨답니다.
문제는 그 친구 아빠도 싫어하고 그 친구도 별로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데
이 새끼 고양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왔다는 겁니다.
그 전날 같이 가서 보면서 걱정을 하다가 온 참이라 마음에 걸리나봅니다.
딸 아이가 고양이를 데리고 살고 있으니 좋은 방법을 알 것 같다고 물어왔지만
별다른 묘안이 나지 않는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
그냥 밖에다 풀어주고 가라고 해!’
그런데 대답처럼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린데 다시 위험에 처하면 어쩌냐부터
기껏 꺼내주었더니 다시 또 그곳으로 들어가면
아주머니에게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는 등 걱정이 많았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냉정하다.
자기가 무능력한 게 속상하다. 별 감상적 상상에 빠져 원망 비슷한 투정을 합니다.
막 짜증도 나고 늦은 시간에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성급함만 앞섰습니다.
그러다 잠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다시 멀리 물러났습니다.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그때마다 결론은 그 문제 자체가 아니었다는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다시 차분히 들으면서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남자들의 습관,,
똑똑한 양자 택일을 강요하는 소위 건설적인 충고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딸아이는 쌓인 외로움과 누군가와 편하게 사소한 고민들을 나눌 사람이 없어
힘들어 하는 중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흑 아니면 백!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못하는 건 깨끗이 관심 끄기!
도 아니면 모, 뭐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남자 어른들의 흔한 스타일이지요.
똑똑한 이성적 사고나 결단을 내리는데 주저하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감정은
미련하고 멍청한 태도로 몰아세워버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이웃, 혹은 친구가 되는 데는 그런 능숙함보다
다른게 필요하다는 걸 자주 확인했습니다.
말이 하고 싶다. 논리 정연한 토론이 아니라 중구남방 수다 같은 말이...
재판장의 법률적용 같은 훈시가 아니라
따뜻하게 안아주는 체온 같은 말이 듣고 싶기도하고!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잘못된 습관이 되던지 누구에게 해가 되든지 상관없이 편만 들어주고
잘한다고 했다가는 아주 망치는 나쁜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들어 주고 이해를 해주되 옳지 않은 것을 부추기지 않기란 정말 힘든 곡예입니다.
사랑과 정의가 때론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 같기도 합니다.
지혜와 배려가 충분하지 않으면 자칫 잘난 씁쓸한 선생 노릇으로 끝나든지,
아님 철없는 한패거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정리가 조금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기를 상황이 아니니 일단 밖에 풀어주고,
어미나 다른 고양이를 만나 잘 따라가면 다행이고
만일 다시 집으로 들어오거나 또 굶고 있으면 다시 대책을 세우기로!
그런데도 서운해서 자꾸 말을 놓지 않아 물어보니
내일 사료랑 먹을 것을 좀 가지고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나 봅니다.
그 밤에 내보내면 다시 얼굴도 못보고 밥을 줄 기회도 없어진다고 못내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가 온갖 당연한 결정들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유를 대고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던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바람은 모르고, 옳고 똑똑부러지는 방법들만 가지고 강요를 했으니
말이 먹힐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건 마음 약한 아이가 가진 감성이었습니다.
그걸 눈치 못챈 내가 온갖 교과서를 펴서 따지고 설득하니 핀트가 안맞았지요.
마음에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주는지를 그대로 수용하는 각오를 가지자!
아이와 그렇게 방식을 정했지요.
말도 안 해보고 지레 안 들어주겠지, 흉보겠지, 짐작으로 서운해하고
정작 가장 원하는건 숨긴 채 딴소리 하다보면
실타래처럼 오해를 부르고 거리감이 생겨 힘들어질 수 있다,
뭐 그렇게 둘이 결론을 내렸지요.
간신히 마음을 달래주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 누군가를 사랑하고 친구가 되어 준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구나! 하는...
판사 노릇이나 한패거리가 되는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진정한 친구나 가족이 된다는 것은 멀고도 어렵고,
지혜와 인내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또 배웠습니다.
우리 하나님,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 미안해졌습니다.
잘못할 때마다 율법 몇 조 몇 항을 들이밀고 벌을 주기만 한다면 뭐 어렵겠어요.
아니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든지,
죄가 쌓여 지옥으로 떨어지든 말든 잘한다! 잘한다! 만 하면서
퍼주기만 하는 맹목적 사랑이라면 그리 어려울 것 없겠지요.
책임질 필요가 없는 자비나 자선이란 힘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단도 치고, 권면하고
매를 들고나면 품에 안고 달래고,
나쁜 버릇을 고치면서 같이 마음 고생을 감수해주시는 길이란
참 속터지면서 고단한 길입니다.
한 아이를 상대하면서도 이렇게 버거운데
온 인류를 데리고 하는 그 사랑의 생활이라니...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고맙고 또 죄송합니다.
많이 힘드셨을 우리 하나님!